known's JOURNAL

2월 25일의 생각 : 파이팅은 왜 응원이 되었을까

권노운KWONKNOWN 2022. 2. 2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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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해서 하루를 준비하는 아침, 일주일을 피곤하고 정신없이 보내온 동기에게 응원을 던졌다. “파이팅이야.” 그리고 문득, 파이팅은 왜 응원의 의미가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많은 기사나 칼럼 등을 통해 잘못된 외래어라고 전달이 되었음에도, 영어의 ‘fighting’은 우리나라만의 언어로 자리매김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파이팅을 검색해보면,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라는 뜻의 감탄사라고 나온다.

  ‘파이팅’은 왜 응원이 되었을까? 나의 회사동기는 과거 노예의 싸움에서 그 근본을 추측했다. 고대부터 유혈이 낭자한 혈투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고대 로마의 경기를 보거나, 좁게는 한국의 소싸움만 봐도 그러하다. 관객 혹은 전투 대상의 소유자(인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나 통합하여 말하겠다)는 결투가 벌어지는 장면을 보며, 승리를 따내기 위해 더 크게 싸움을 부추기고 그런 과정에서 아드레날린 분비가 촉진되는데, 이것이 변모하여 지금의 응원 형태로 파이팅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우리는 실제로 몸이 부닥치는 몸싸움이 아니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봐가며 소리없이 펼쳐지는 기싸움, 전략을 통해 본인에게 유리한 입장을 만드는 두뇌싸움 등 다양한 상황을 싸움으로 표현한다. 바둑에서의 상황을 살펴보자. 바둑판 위에서는 상대편에겐 불리하고 자신에겐 승전보를 가져다 줄 집을 지어나가야 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각자의 두뇌 연산만으로 집은 지어나가는 선수들에게 우리는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사회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또 다른 ‘파이팅’은 사람들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퇴근길 일어나는 무자비한 폭력 사태부터 살상 무기를 이용한 전쟁까지, 서로의 이권 다툼과 무자비한 행동 속에 사회 속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오고 가는 파이팅은 더 이상 응원이 아니다. 비록 우리 사회에서 쓰이는 의미는 다를지 몰라도,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모든 희생에 대해 파이팅은 사라져야 할 인간의 과오 중 하나이자 사실은 무서운 단어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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