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반복되고 말았다. 남이 보기에는 그럴싸하게 많은 것들을 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금세 흥미를 잃곤 하는 나에게 습관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블로그를 만들어두고 엄청난 계획에 짓눌려 하루 이틀 만에 일을 그르치는 것은 허다했지만, 그때마다 그럴싸한 핑계도 있었다. 이번엔 아무래도 ‘일이 바빠서’,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피곤해서’ 등을 댈 수 있겠다. 뭐, 필요하다면 만들어서라도 핑계를 댈 거다. 나에겐 이런 나쁜 습관이 자리 잡혀버렸다. 그런 습관을 타파하려고 다시 글을 쓴다. 요새 도통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일이든 개인적인 생각이든 글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많은 이들이 대부분 공통적으로 ‘직장’, ‘건강’, ‘경제’, 그리고 이들을 모두 종합한 ‘미래’에 관해 고민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런 것들을 생각하기 앞서 당장 내 눈앞에 닥친 현실을 어떻게 정리하고 개척해나갈지 큰 고민을 가지고 있다. 한동안은 막연하게 회사를 나가고 싶어 했고 지금도 딱히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이유는 힘들어서. ‘힘들다’라는 이유로 퇴사를 고려한다고 했을 때, 주변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왜, 무엇이 힘든가’이지만, 사실 이건 매우 복합적인 것이며 복잡한 관계가 얽혀 있다.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진실이 있으며, 구태여 말하고 싶지 않은 사유도 있다. 이런 부수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어쨌든 회사에 와서 내가 하는 일이 그저 회사일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회사 분위기도 그렇고, 점점 돈만 좇아가는 생각들을 마주하며 날이 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졌다. 내가 면담을 통해 요구하는 이야기는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결국 내가 하는 일에는 아무 반영 없이 변함이 없다는 것도 슬펐다. 그런데 더 막막한 것은 3년을 그렇게 다녔으면서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해야 하는 것들이 각각의 의미를 잃고 경계 없이 모호하게 흩뜨려졌다. 이쯤 되면 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연습이 필요했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일단 할 수 있는 최선만 했다. 그리고 그게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주진 않은 것 같다.
우리는 평생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하고 발견하여 행복을 느끼고, 또 그것을 잃을 수 있기에 슬픔을 느낀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고 싶다. 단순히 퇴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되려 여기저기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불안한 상태로 지내다가 퇴사한 것을 후회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 이유가 무엇일까? 회사 일을 마치고 내가 한 일은, 지금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그럴싸한 핑계 대기.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들을 뒤로하고 회사일에 최선을 다했기에 보상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배불리 먹고, 멍 때리며,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늘어지게 잤다. 적극적으로 관심사를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핑계대기는 그에 비해 압도적으로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점점 초조해진다. 아직 뭘 해야 할지 정하지도 못했는데, 내 마음의 마감시한으로 잡은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개인적인 일과 회사 일 모두 12월 초에 버겁게 맞닥뜨렸을 때 심적으로 많이 불안했다. 그때 회사동기가 고맙게도 마스다 미리의 만화,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와 ‘주말엔 숲으로’라는 책을 빌려줬다. 여러 핑계 속에서 아직 첫 페이지를 못 넘기고 있는 책이지만 내게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대략 3년 전, 너무 고맙게도 선배 누나에게 졸업 선물로 하람의 에세이,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라는 책을 선물 받았는데, 이 책을 받고 이틀 후에 입사를 한 나는 누나가 책에 써준 글귀만 잠시 읽고 책을 펴보지 않았다. (참 대단하다, 권노운…) 그러면서 그때 누나가 하던 말이, “너한테 졸업 선물을 주려고 했는데, 너는 매번 다 좋다라고만 해서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고민되더라.”였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2022년 29살인 나는 더 늦기 전에 찾아 하나하나 이곳에 남기고 기억하고 싶다.
주말 동안 많은 눈이 왔다. 일요일은 비교적 날씨가 회복되어 눈이 점차 녹아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저마다의 눈사람에는 개성이 있다. 잘 만들거나, 크게 만드는 것은 중요치 않다. 겨울의 공원을 지켜주고 있는 하얗고 동그란 수많은 얼굴과 그 얼굴을 만들며 즐거워했을 사람들, 신난 가족들과 연인들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눈 가지고 놀기를 참 좋아했는데, 언제부터 잊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잊어버렸던 것들을 하나하나 되짚고, 그 밖에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찾아보며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보려 한다. 어떻게 보면 현실을 직시하고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전히 ‘나’라는 사람을 위해 투자한 시간이 너무 적었다. 이제는 하기 싫은 것을 계속 잡고 있기보단 자발적으로 더 넓은 세상을 탐색하고 경험을 쌓을 시간이다. 핑계 대지 말고 진짜 좋아하고, 원하던 걸 찾아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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