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n's JOURNAL

1년을 정리했던 휴가, 그리고 1년을 시작하는 주말.

권노운KWONKNOWN 2022. 1. 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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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정리한 영상으로 글을 시작한다.

https://youtu.be/rhnkLWDOIbs


새해의 해가 두번이나 밝았다. 2021년의 12월 30일과 31일은 휴가로 개인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12월에 한 해를 돌아보려 했으나, 너무 바빴던 탓에 아니, 그런 핑계 섞인 말에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하고 보낼 뻔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납품 건들이 조금씩 뒤로 늦춰지면서 나에게도 연말연초 연휴가 생겼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온 연차 이틀을 써서, 하루는 푹 쉬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었다. 다음날은 2021년의 마지막날이었고, 개운한 마음으로 날이 저물 때까지 몸을 아니, 손을 바삐 움직였다.

'올 한 해는 어땠을까', 아침밥을 가볍게 건너뛰고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해보니 회사에서 맡았던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것 외에는 별달리 목표했던 바도 없고, 그렇다고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어려운 일년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따스한 햇살과 포근한 커피향에 마음이 진정되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는, 마지막날이니만큼 그 동안 미뤄왔던 두 가지의 일을 떠올렸다. 하나는 '어머니에게 해바라기 그림을 그려주기로 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찍어뒀던 동영상을 모아 나의 생활을 담은 영상클립 만들기'였다.

먼저 해바라기 그림부터 시작했다. 나는 그림그리기를 좋아한다. 적어도 어렸을 때 미술을 배울 때는 그랬다.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미술대회 상을 받으려고 그림을 그릴 때도 좋아했다. 헌데 돌아보니, 배움과 수상 이외에 순전히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려본 적은 없었다. 지난 여름, 본가의 집수리가 끝나고 어머니는 화이트톤으로 멀끔해진 집안에(어쩌면 무채색으로 단조로워진 집안에) 생기를 불어넣을 꽃 그림을 원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해바라기 그림을 하나 사줄 수 있겠냐고 말씀하셨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어렸을 때 6년 넘게 그림을 배울 수 있게 해준 어머니에게 보다 뜻깊은 선물을 하고 싶어졌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것은 초가을 무렵,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붓을 들었다. 일년을 마무리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그리는 그림, 나는 그림그리기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

오전에 시작했던 그림그리기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화구(畵具)를 정리하다보니, 초등학교 오후 시간에 미술학원으로 가 그림을 그리고 정리를 하던 그 때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본가에 몇 장의 그림들로 그 당시를 추억할 수 있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이나 나의 모습은 비록 내가 느낀 것임에도 무언가가 떠오르거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시 의자에 앉은 나는 자연스레 아이패드를 켜서 그간 찍어둔 3~8초 가량의 짧은 영상들을 정리해봤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나에게는 소중한 순간이고 보석이었다. 그중에서도 스토리가 될만한 소재들과 분량을 엮어 편집하고, 노래와 자막을 추가했다. 만들다보니 찍었다고 예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순간들이 기록되어있었다. 함께 해준 친구들에게 한 명, 한 명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하지만 하루의 끝이 가까워져오고 있어 일단 하던 일을 마무리짓기로 했다.


영상을 모두 편집하고 추출하니 밤 11시가 지나고 있었다. 영상이 무려 14GB(...)를 넘어가고 있어서 인터넷에 업로드는 다음날인 1월 1일 저녁이 되어서야 끝낼 수 있었다. 일단은 마쳤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한 해의 마지막이자 새해의 첫 어둠 속에서 지인들에게 안부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시작을 맞이했다. 나는 새해를 맞이할 때와 명절 연휴에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다. 중학교 때 처음 핸드폰이 생기고 한창 문자가 활성화됐던 시기에 하던 버릇이어서 다른 메신저가 활성화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가볍게 안부를 전하기에 문자만큼 좋은 게 없다. 이런 문자를 받으면서 2000년대의 감성을 기억하여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의 문자를 매년 받아 일련의 행사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연례문자는 나의 개인적인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받아주는 모든 이들과 추가로 주고 받는 인사 속에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1월 1일, 새해의 해가 밝아서 본가에 다녀왔다. 정성스레 포장해온 그림과 포장이 요란한 한국 차(茶) 세트를 부모님에게 건네고, 대략 한달 반만에 마주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 삼 남매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 담긴 사진도 보고, 일전에 비디옾테이프에서 영상파일로 변환했던 부모님의 결혼식 영상도 보았다. 영상을 보고 나서 '지금이 더 좋다'는 어머니의 말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었다. (오히려 좋아!) 만두도 가족들과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손수 빚어 떡만둣국을 해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단란함과 편안함이었다.

아버지와 누나들은 여전히 하던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다니시던 요양병원이 지난달 문을 닫으면서 실업급여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번달 급여를 받기 위해선 취업활동으로 인정할 일을 해야 하는데, 이게 대부분 PC로 해야 하는 일이라 애를 먹으신 것 같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컴퓨터가 어려우신 어머니를 위해 이것저것 알려드렸는데 나에겐 당연한 무언가를 알려드린다는 게 참 어려운 일로 느껴졌다. 전자장비에 두려움이 있는 어머니에게, 필요한 정보를 교육받아야하는 사람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써 가르쳐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죄송했다. 그래도 차근차근 잘 따라와준 어머니 덕분에 혼자서도 강의수강 등을 혼자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꾸준할지는 다음 번 방문해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어머니가 무언가를 터득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하는 순간은 기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이제 서울로 다시 돌아와서 출근 전 준비를 하고 있다. 2021년이 마냥 힘들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돌아보니 곳곳에 즐거움이 깃들어있었다. 그 순간들에, 그때의 즐거움을 더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이제 새로운 해가 찾아왔으니 올해는 아쉬움 없는 한 해를 보내봐야겠다. 지난 해에 내가 찾았던, 나를 찾아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임인년 2022년에도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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