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N.MOVIE] 영화 아니, 광고? ‘일장춘몽’ | 영화 일장춘몽 | 박찬욱 감독 영화 | 단편영화 리뷰 | 스포일러 없음
저는 회사에서 미디어 및 공연 문화를 감상하고 이야기하는 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다른 동호회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활동에 제약이 많아지며 아쉽게도 활동이 극히 줄었던 동호회 중 하나입니다. 회사의 정책이 달라지고 잠시 동호회가 사라지는 줄 알았지만, 이번 3월부터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습니다.
글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자면 회사의 동호회 활동 후기로 글을 올렸던 터라 스포일러를 최대한 지양합니다. 저희 동호회 생각을 나누고 추천해 드리는 목적으로 후기를 남겼던 글이므로, 혹시라도 작품을 보시고 싶으신 분들도 편하게 후기를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01. 영화 '일장춘몽' 소개
따뜻한 춘삼월(春三月)이 왔지만 여전히 코로나 상황은 끝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쉽긴 해도 그냥 지나가기는 좀 그래서,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단편영화를 감상하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선택한 작품은 지난 2월 18일 유튜브를 통해서 공개된 박찬욱 감독의 ‘일장춘몽’입니다. 영화라고 하면 영화라 할 수 있고, 광고라고 하면 또 그것 역시 틀린 말은 아닌 이 ‘작품’은 20여 분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관람과 소감을 나누기에는 적당한 시간이죠?

극은 캄캄한 어둠 속, 장의사가 무덤을 파헤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평화로웠던 마을에 닥친 위기를 모면하고자 장의사는 협객인 '흰담비'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 과정에서 죽은 흰담비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죽은 자의 관을 훔치게 되죠. 그러자 그 관의 주인이었던 검객의 영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장의사의 자초지종을 듣게 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리고 있습니다. 동호회에서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를 3가지 꼽자면,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어서 부담 없이 볼 수 있고 누구든지 유튜브만 켜면 즐겁게 감상할 수 있으며, 아이폰을 활용한 실험적인 시도가 담긴 흥미로운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02. 영화의 내용과 느낌 (스포일러X)
영화는 20여 분의 러닝타임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 즈음에서 당시 세태의 사회적인 이슈와 현시대의 이슈를 접목하여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아, 할 말 많은 이야기임에도 극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구성하여 보여줍니다. 게다가 영화 속 장르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20분 동안 다채로운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아 자연스레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동호회원 분들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점점 빠져든다"라고 표현하였고 저 역시 20분이 금방 지나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이 영화는 인생의 덧없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썩어 문드러질 몸'이지만 '천년만년 누워있을 관'을 놓고 싸우는 남녀 간의 이야기, 밋밋한 이승과 찬란한 저승의 대비되는 색상을 통해 과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지, 삶과 죽음이란 무엇 일지에 대한 관객 스스로 앞으로의 삶 속에서 찾아보라고 질문을 던지는 듯하죠. 가볍게 볼 수 있지만 깊이 있는 내용에 대해 동호회원 분들은 "짧지만 여러 생각이 들게 된다", "극에서 활발히 춤추는 장면이 현생이 아니어서인지,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라고 의견을 주셨습니다.
03. 아이폰으로 찍은 영화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에 있어 '아이폰'은 빠질 수 없는 주제입니다. ‘일장춘몽’은 박찬욱 감독이 2018년에 이어 다시 한번 참여한 샷 온 아이폰(Shot on iPhone) 프로젝트로 탄생한 작품인데요, ‘아이폰으로 찍었다고?’라는 궁금증에 이 영상을 클릭하면 영화를 관람한다는 생각보다, 화질이 어떠한지, 명암과 밝기는 적당한지, 동영상의 전환은 부드러운지와 같은 기술적인 요소를 구경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런 기대에 맞게 어둠 속에서의 피사체 촬영 장면, 등장인물들의 피부 결까지 여실히 드러나는 얼굴 접사, 방수 성능을 보여주는 수중 촬영은 물론, 한국의 옛 장례문화와 의복을 통해 다채로운 색감을 이 작은 카메라로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양한 시도로 만들어진 장면들 덕분에 어느새 우리는 아이폰으로 찍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극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렇게 광고를 영화로 받아들인 순간, 영화는 끝이 나고 '이건 광고였음'을 다시 분명히 합니다.

잘 만들어진 20여 분짜리 초대형 광고일지, 새로운 실험으로 탄생한 20여 분짜리 단편 영화일지는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요. '일장춘몽'의 메이킹 영상 속에서 작은 크기만큼 더 자유롭고 현란하게 움직이는 카메라, 아니 아이폰을 보며 동호회원 분들 중 한 분은 "앞으로 영화의 개인 작업 시대가 열릴 것 같다" 말씀해주셨는데요, 어떻게 보면 사실 누구나 내 손 안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습니다. 이번 동호회 활동을 통해, 촬영 기술과 감각만 있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박찬욱 감독처럼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도 해봅니다.
좋은 영화는 지치고 힘든 삶 속에서 가끔 황홀한 꿈속으로 우리를 데려다주곤 합니다. 우리는 그 영화 속에서 또다시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죠. 하지만 우리 역시 삶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각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찍고 살아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삶은 가끔 덧없게 느껴질 수 있지만, 더없이 소중한 것 역시 삶이니까요. 아이폰으로 찍은 '일장춘몽'을 보니 더더욱 영화가 곧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삶 속 깊숙이 영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저는 영화 보는 것을 즐기면서도 다양한 영화를 접하지는 않는 편이었어요. 제 입맛에 맞는 영화만 골라먹는 콘텐츠 편식자였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동호회 활동을 통해 제가 보지 않을 것 같은 매체도 볼 수 있는 자리가 생기고 그것을 또 논하게 되니 즐겁더군요.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을 보며 생각을 넓게 가져봐야겠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작품과 다채로운 후기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