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 벌이기를 좋아한다.
내가 자랄 때 가장 많이 본 예능은 무한도전이었다. 매회차마다 새로운 포맷이 펼쳐졌다. 회차가 거듭할수록 멤버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새로운 자아를 찾는 듯 또 다른 별명이 만들어졌다. 이런 예능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매년 단기 계획이나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 연말과 연초의 연례 행사였다. 적어도 대학교 생활까지도 여러 동아리를 기웃거리거나, 공모전을 준비하는 등 내 기준에서 프로젝트라고 할만한 일들을 해왔다. 요새는 나이를 먹어서인지, 회사 일이 바빠서인지 개인적으로 일을 많이 벌이진 않는다. 삶이 조금 무료하던 찰나, 뮤지컬을 좋아하는 내게 한 극단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뮤지컬 남자배우’를 구하고 있었는데, 직장인 극단이래서 더 생각하지도 않고 지원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고 있지 않다. 아니, 진작에 그만두었다. 문제는 바로 이거다. 쉽게 그만둔다는 거, 쉽게 질린다는 거. 그럴싸한 핑계로 벌여둔 일을 덮어두는 거.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만큼, 일 버리기도 좋아한다. 하던 일을 중도에 그만두는 것. 하지만 내가 원치 않게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마저 내 탓이란 생각이 든다. 일 그만두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내가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아하던 일도 잘 안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의 말에 어떠한 개연성도,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괜히 제 발이 저린 사람의 모습이랄까. 일이 잘 되지 않을 거라고 잠정 지어놓으면서도 왜 일을 벌이는 것일까. 마음 속으로는 그만두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좋은 결실을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그걸 이끌고 갈 자신감이나 확신이 부족했던 것 같다. 혹은 너무 단기적인 성과를 바라는 조급함일 수도 있다. 앞에서 말한 ‘문제’는 무엇인가에 질려 그만두는 것 자체가 아니라, 내가 하는 것에 확신을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에 있다. 나에 대해 확신이 부족한 것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학창시절엔 정해진 도로가 있어서 내가 굳이 관심사를 좇으며 길을 개척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향해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사회에 발을 내딛어보니, 보호 장치는 없다. 이제 내가 공구를 들고 도로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나는 도로를 어느 쪽으로, 얼마나 넓게 깔지 고민하느라 어디에도 길을 내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올해의 계획은 그저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를 끝내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개인적으로 아무런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회사 일 말고, 2022년에는 새로운 일을 한 번 벌여볼까 싶다. 그래서, 뭐 할까?